1. 책을 읽는 독서광
참 오래된 얘기다! 자유교양도서, 40년 전에 초등학교에는 국내외 위인전집을 포함하여 학교에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독서 책자가 있었다. 그 당시는 우리나라의 출판문화가 열악하던 시절이어서 가정마다 지금처럼 유아용, 아동용, 청소년용으로 다양하게 책을 구매해서 읽을 수 없었다. 국내 위인전집을 학교 도서관에 비치하였으나 여러 학생이 정해진 날짜까지 모두 돌려서 읽어야 했었기에 책을 제날짜에 반납을 해야 했었다. 그리고 독서목록에 수록된 책을 많이 읽은 학생은 매달 전교생이 모이는 주간조회에서 표창장을 교장선생님께 수여를 받았다.
그때 전교생이 보는 가운데, 교장선생님께 상장을 처음 받고 나서 가슴이 벅찼던 기억이 평생 책 읽기를 싫어하지 않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또 상장을 받을 욕심에 경쟁하듯이 책을 읽어나갔던 기억이 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안중근의사와 이순신 장군, 을지문덕 장군 등 위인전집을 읽으며 가슴 설레었던 경험이다.
2. ‘의사 안중근’이란 영화
하루는 아주 오래된 영사기로 전체 학생이 대강당에 모여서 ‘의사 안중근’이란 영화를 보게 되었다. 위인전을 통해서 느꼈던 감동이 생생히 묘사된 영화를 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안중근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대한조선을 강제로 식민지화시켜서 우리 민족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일본의 총독 이등방문을 아주 통쾌하게 저격하는 장면에서 큰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곧이어 일본 순사들에게 체포되어 일본의 형무소로 흰 백마가 끄는 마차에 끌려가는 장면과 마지막 사형을 집행하는 장면에서는 어린 마음이었지만, 끌어 오르는 울분과 의협심으로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강당 밖으로 나왔을 때, 아이들의 퉁퉁 부은 눈을 볼 수가 있었다. 시대적인 배경도 있었지만, 그 시절 국가와 민족을 위한 애국심 교육은 정말 철저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이순신 장군 편에서는 여러 번의 무과급제에서 낙방했지만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순신은 나이가 많은 상태로 국가고시에 응시하였는데 말에서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내달려서 끝내는 급제에 합격하였다. 명량해전에서 거북선이 왜군의 배를 박살 내는 장면에서는 신나서 박수를 치고,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장렬히 전사하며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대목에서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고구려를 수나라 수양제가 집적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와서 절체절명의 국가위기에서 슬기롭게 침공을 막아낸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지금의 압록강을 백성들과 장군의 군대가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서 강둑을 막아 적군을 강 한가운데까지 유인하고 강둑을 터트려서 100만의 수나라 군사들을 수장시켰던 장면은 너무 통쾌하기도 했다.
3. 그래서 싹 수는 어릴 적에
자유교양도서의 책을 모조리 읽은 나는 책을 무척 좋아했다. 그 동네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집에 초등학생용 문학전집과 세계위인전집이 있어 매우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기억나는 것이 있다. 내가 큰마음을 먹고 그 친구에게 책을 빌려다 볼 수 없느냐고 했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엄마는 쉽게 허락을 하실 텐데 할머니가 집 물건이 대문 밖을 넘어서는 것을 아주 싫어하셔서 할머니 몰래 빌려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책을 빌려보면서 할머니가 집에 계시는 날에는 가슴이 얼마나 두근거렸던지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책을 빌려와 다음 책을 볼 욕심에 날 새는 줄 몰랐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전기요금도 아끼던 시절이라 늦게까지 책을 읽고 있는데 책 그만 보고 빨리 자란 부모님 말씀이 참 싫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자녀들에게 얘기를 해주면, 아무 감흥이 없어 서운하기도 하다. 그래도 그때는 참 순수했던 것 같다.
40년 세월이 지나서 그 동네에서 그래도 가방끈이 가장 긴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되어있는 걸 보면, 어린 시절에 무슨 생각을 하고 행동을 했는지가 한참 세월이 지나서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을 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누가 그런 말을 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자녀가 알아서 밤새도록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부모가 있는가! 대박이다.